안녕하세요~

오늘 여러 좋은 분들 덕에 다작하게 되네요.  물론 공부도 많이 되구요.  그런데 제가 오늘 올린 글 "양적완화 정책, 재정위기를 해결할 '사실상' 유일한 수단"에 개패님이 좋은 질문을 해주셨기에 답글 형태로 올려볼까 합니다.   개패님의 질문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링크: http://estin.net/forum/opinion/id/343

"국채금리 상승에 의한 채권가격 하락이 부채 경감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돈의 가치의 하락(인플레이션)이 기존 부채를 경감해 주는 것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국채 시장에서 도는 것은 이미 국가가 발행한 국채이며 말씀하신 대로 지급이자는 coupon에 명시되어 있고, 현재 대부분의 거래는 국가가 관여하는 것이 아닌 ECB와 은행들 사이의(혹은 투기꾼들?) 거래인 듯 합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의 하락은 부채를 경감해 주지만, 동시에 신규 국채 발행에 부담을 주게 됩니다. 이것은 ECB로 하여금 국채 매입을 위한 자금을 압박할 것이고 또 다시 머니 프린팅을 하여야 하는 악순환의 구조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플레이션에 의한 금리 상승뿐 아니라 최종 대부자의 신용을 위협하는 정도에 이르렀기에 일어나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또한 이러한 화폐에 대한 불신이, (너무 최악의 경우이긴 합니다만)미국채에까지 옮겨 붙었을 때 규모가 파악도 안 되는 금리 관련 파생 상품으로 인해 2008보다 더 큰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 분명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를 밝혀보겠습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경제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책 "금융의 지배"에서 상당 부분 도움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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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1923년 독일 초인플레이션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아래의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화폐 단위가 '억'이나 '조'가 되어야만 물건을 살 수 있었던 시대죠.

 

그림설명: 초인플레이션 시대(1923년) 발행된 1억 마르크 지폐.

 

초인플레이션 발생의 원인은?

그럼 1923년 독일 초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발생했을까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쟁 배상금이었습니다.  총 1,320억 마르크(금화로 배정되었습니다), 명목 국민총생산의 약 세 배 정도 되는 금액이니,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독일관련 금융자산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독일 정부가 1919년 발생했던 혁명의 영향으로 공공부문 근로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등 재정지출을 통제하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향으로 1921년 전쟁 배상금이 확정되기 전에 이미 독일의 재정적자는 국민총생산 대비 10% 수준을 넘어 섰습니다. 

세 번째는 독일의 자본가들이 마르크 화 약세를 유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통화가치가 급락하면 독일 수출품이 미국이나 프랑스 등 경쟁국 제조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가질 것이며, 이는 전쟁 배상금의 인하를 유도할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물론 마르크 화의 약세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야만 전쟁 배상금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판단과 달리 사태가 진행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전쟁 배상금을 전혀 깎아주지 않은 것은 물론 프랑스가 독일의 루르탄전을 점령하는 등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고, 독일 바이마르 정권이 재정긴축에 대해 전혀 의욕이 없었던 것.  국내에서 독일 기업인들이 초인플레이션에 대비해 투기에 나선 것 등이 겹쳐 아래의 <표>에 나타난 것과 같은 참혹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일상에서 200억 마르크짜리 지폐가 쓰였으며, 1923년 한 해에만 물가 상승률이 1,820억 %에 이르렀습니다(자릿 수를 잘못 쓴게 아닙니다).

 

 

 

초인플레이션의 영향은?

초인플레이션 결과, 어떤 일이 나타났을까요?  돈 뿐만 아니라 그 돈으로 된 모든 형태의 부와 고정 수입도 무가치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에는 채권도 포함되었습니다.  전쟁 전후에 누적되었던 국내의 모든 빚이 청산 가능했고 또 실제로 청산되면서 엄청난 빚더미를 깎아 내렸습니다. 

예. 이는 세금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채권자뿐만 아니라 고정된 현금 소득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세금을 물었던 것이죠.  이는 엄청난 평준화를 낳았으며, 오로지 기업가들만 가격을 올리고 달러를 비축하고 집이나 공장 같은 부동산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렇지만 1923년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인플레이션을 통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가 디플레이션 기간 동안의 대량실업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즉 "가난한 세계에서 실업을 양산하느니 금리 생활자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는 게 낫다"는 주장이 1932년 미국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행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대대적인 재정지출 및 통화공급 확대 정책(=금 본위제 폐기)이 시행되죠.

물론 초인플레이션은 목적(=부채 소멸)을 달성한 다음 기적적으로 사라집니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에 기반해 지출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히고, 또 독일의 어려움이 '러시아와 같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승국 정부(영국, 프랑스 등)의 우려가 부각되며 전쟁 배상금이 탕감되어 초인플레이션이 해소되죠(정확하게는 배상금을 일부 깎아줬었고, 이후 히틀러가 지불 정지 선언을 했습니다).  이후 상당 기간 고금리 시대가 이어집니다만, 뭐 이전의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비할 수 없는 물가의 안정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초인플레이션은 매우 국지적인, 특별한 현상이다.  2) 초인플레가 아니어도 인플레가 발생하면 국민들에게 일종의 세금을 거두게 되며, 특히 채권 보유자 및 고정금리 생활자가 피해를 본다.   

 

이상의 이야기를 이탈리아에 적용하면?

지금 이탈리아나 스페인 국채의 대부분은 유럽 국가의 국민(및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죠. 이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기존 채권의 가격이 하락하고 GDP대비 국채 비율이 하락할 것이며, 보유한 '실물 자산'의 가치가 상승합니다.  실물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정부가 가장 승자가 될 것이며, 이탈리아의 기업들도 이득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재정긴축'을 시행 중인데, 이탈리아가 그렇게 인플레가 가속화될까요?  기본적으로 내수부문의 수요가 완전히 죽었으니까요.  결국 인플레이션은 경제여건이 좋은(=GDP Gap이 플러스인) 북유럽 국가에서 집중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신규 발행 채권의 쿠폰 금리가 상승합니다.  그러나 양적완화를 통해 ECB가 시장에서 소화못한 이탈리아 채권을 매입하기에 채권금리의 상단은 제약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행된 채권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이자지급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또 이탈리아 기업들의 경쟁력은 개선됩니다.  북유럽에 비해서 말입니다.  그 결과 이탈리아 기업들의 수출이 늘어나고 또 자산을 해외에 매각할 때 제 값을 받고 팔 수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유럽지역 전반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게 됩니다.  유로화에 대한 패닉이 발생할 수록 유로지역의 경상수지가 개선되며, 오히려 장기적으로 유로화의 가치는 '수급 여건 개선' 영향으로 반등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유로화는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유일한 통화이기 때문에 외국의 중앙은행이 유로화를 대거 처분할 가능성은 낮아, 오히려 장기적으로 유로화의 가치가 반등할 여지도 있습니다. 

이상으로 길지 않은 글을 마감해 봅니다.  즐거운 투자되시길